사도행전 8장 1-25절 “교회의 확장” / 찬190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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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사람에 의해 인류의 역사가 바뀔 수 있다는 것은 단지 공허한 탁상이론이 아니라 얼마든지 현실 가능한 역사적 사실임을 여실히 입증해 주고 있습니다. 우리는 오늘의 본문 속에서도 바로 그러한 인물을 만나게 됩니다.
스데반의 순교와 더불어 시작된 유대교의 대박해로 인해, 사도들을 제외한 교인들은 예루살렘을 떠나 각처로 흩어지기 시작했습니다. 오늘 본문 4–5절은 그 흩어진 디아스포라와 관련하여 다음과 같이 증언하고 있습니다.
사도행전 8:4–5 “그 흩어진 사람들이 두루 다니며 복음의 말씀을 전할새 빌립이 사마리아 성에 내려가 그리스도를 백성에게 전파하니”
흩어진 디아스포라들은 발길이 닿는 곳마다 복음을 증거하였습니다. 그들은 주님께서 자신들을 흩으신 까닭이 바로 거기에 있음을 바르게 깨달은 진정한 그리스도인들이었습니다. 그 디아스포라들 가운데 빌립이란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는 예수님의 열두 제자 중의 한 사람인 사도 빌립이 아니라, 예루살렘 교회가 초대 집사로 세운 일곱 집사 가운데 한 명인 빌립 집사였습니다. 빌립은 사마리아 성으로 내려가 사마리아인들에게 복음을 전했습니다. 그 결과를 본문 6절이 밝혀 주고 있습니다.
사도행전 8:6 “무리가 빌립의 말도 듣고 행하는 표적도 보고 한마음으로 그가 하는 말을 따르더라”
사마리아 성 사람들은 한마음이 되어 빌립이 전하는 복음을 따랐습니다. 그뿐만이 아니었습니다.
사도행전 8:7–8 “많은 사람에게 붙었던 더러운 귀신들이 크게 소리를 지르며 나가고 또 많은 중풍병자와 못 걷는 사람이 나으니 그 성에 큰 기쁨이 있더라”
사마리아 성에, 더 정확하게 말하여 사마리아 성 사람들에게 큰 기쁨이 임했습니다. 그들이 영육 간에 구원을, 새 생명을 얻었기 때문입니다. 그들에게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삶이 시작된 것이었습니다
빌립에 의한 사마리아 성 복음화의 참된 의미는 보다 높은 데 있습니다.
본래 하나의 나라였던 이스라엘은 솔로몬의 아들 르호보암 왕 때에 남북으로 분단되었고, 분단된 북왕국의 수도가 사마리아였습니다. 북 왕국 이스라엘은 앗수르 사르곤 대왕에게 멸망당합니다.
모든 국민을 해외로 추방해 버렸습니다. 그리고 다른 민족을 이주시켜 살게 했습니다. 강제 혼혈정책으로 타민족으로 만들어 버린 것이지요.
이 때문에 사마리아인을 경멸하게 된 이유입니다. 이스라엘 사람으로 여기지 않았습니다. 사람으로 취급하지도 않았습니다.
그 사마리아에 복음이 들어갔고 많은 사람이 따랐고, 능력이 임한 후, 그 성체 큰 기쁨이 있었다고 8절은 표현합니다.
바로 그 사마리아 사람들이 빌립으로부터 복음을 받아들였습니다. 주님의 구원의 역사가 그들에게 임한 것입니다. 이 소문이 알려지자 사도행전 8장 14절에 의하면, 예루살렘에 있던 사도 베드로와 요한이 직접 사마리아에 내려가 그 사실을 확인하였습니다.
사도행전 8:14 “예루살렘에 있는 사도들이 사마리아도 하나님의 말씀을 받았다 함을 듣고 베드로와 요한을 보내매”
참으로 중요한 사건이었습니다. 짐승 같은 사마리아인에게도 주님의 구원이 임했다면, 이방인들에게 전하지 못할 까닭이 없었습니다. 이 복음이 확장되어 빌립집사는 26절 이후 에티오피아 사람에게 전하고 세례를 베풀게 됩니다.
할렐루야!!!은혜가 되지 않습니까? 사도와 스데반의 순교가 씨앗이 되어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끝까지 이르러 증인이 되리라는 그 약속이 성취되고 있습니다.
요한복음 4:9 “사마리아 여자가 이르되 당신은 유대인으로서 어찌하여 사마리아 여자인 나에게 물을 달라 하나이까 하니 이는 유대인이 사마리아인과 상종하지 아니함이러라”
상종도 하지 않는 시대에 복음의 능력이 그들에게 흘러왔고, 그 구원이 임하여 그들이 하나님의 자녀가 됩니다.
사랑하는 교우 여러분!
신앙은 결코 좁고 좁은 자신의 세계 속에 주님의 복음을 가두어 두고, 자신의 편의와 필요에 따라 복음을 왜곡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유대인들이 하나님을 예루살렘성전 안에 가두어 두려 했던 것처럼 백해무익할 뿐입니다. 예루살렘성전 안에 갇힌 하나님이 하나님이실 수 없듯이, 인간에 의해 갇히고 왜곡되는 복음은 복음일 수 없기 때문입니다. 2천 년 전 이 땅에 오셨던 예수님께서는 우리에게 새로운 세계를 주시기 위해 오신 성자 하나님이셨습니다. 우리 모두 우리 자신의 세계를 탈피하여 주님의 그 세계—그 구원의 세계, 그 사랑의 세계, 그 말씀의 세계, 그 영원한 생명의 세계로 주저 없이 뛰어드는 영적 헬라파 유대인이 되십시다. 그 세계 속에서만 이 세상의 비난과 비판, 불이익을 감수하면서까지 지켜야 할 것이 무엇이고, 버려야 할 것이 무엇인지 바르게 분별하고 실천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때 우리가 비록 세상에서 보잘것없어도, 우리는 이 시대의 빌립이 될 수 있습니다. 빌립을 당신의 도구로 쓰신 주님께서, 우리를 이 시대를 위한 당신의 도구로 쓰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우리에게 새롭고도 영원한 세계를 주시기 위해 이 땅에 오시어 생명의 복음을 주신 주님. 우리는 그동안 주님의 복음을 좁디좁은 우리 자신의 세계 속에 가두어 두고, 우리 자신을 위해 필요할 때마다 복음을 왜곡해 왔습니다. 그래서 주님을 믿는다는 우리의 삶 속에서 말씀에 의한 생명의 역사는 전혀 일어날 수 없었고, 결과적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맡겨 주신 귀한 세월을 의미 없이 소진해 왔습니다. 우리의 이 무지와 허물을 용서하여 주옵소서.
이제 우리 모두 우리 자신의 세계를 탈피하여 주님의 세계—그 말씀의 세계, 그 사랑의 세계, 그 영원한 생명의 세계 속으로 뛰어드는 영적 헬라파 유대인이 되게 하여 주옵소서. 그 세계 속에서 말씀에 의해 우리 자신이 먼저 본질적으로 새로워지게 하옵소서. 그 세계 속에서 버려야 할 것을 미련 없이 버리고, 지켜야 할 것을 반드시 지키기 위해, 세상의 비난과 비판과 불이익을 두려워하지 않는 참믿음의 용기를 주옵소서.
그리하여 우리에게 이 사회와 인류의 역사를 새롭게 하는 이 시대의 빌립으로 쓰임 받게 하옵소서. 아멘.